곡물은 누구의 식탁으로 향하는가 – 세계 식량 체계의 불균형

생산은 넘치지만, 굶주리는 이들은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

풍요 속 굶주림, 그 불편한 진실

2025년, 세계는 역사상 가장 많은 곡물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는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억 8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현재 극심한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 분쟁, 기상이변, 물가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원 분배의 구조적인 왜곡에 있다.

곡물이 외교의 수단이 될 때

식량은 오랫동안 지정학적 전략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냉전 시대 미국은 곡물 수출을 외교 카드로 썼고,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곡물 수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두 나라는 세계 밀 수출의 핵심 국가다. 수출 중단은 곧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 위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례는 식량이 단순한 생필품이 아니라, 권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누가 생산하고, 누가 통제하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생존권이 좌우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는 분명 농업에 영향을 준다. 가뭄, 홍수, 고온현상 등은 수확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린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기후 변수 앞에 놓인 농업 인프라의 취약성이다. 토지 집중, 경작지 감소, 정책의 일관성 부재, 첨단 농업 기술에 대한 접근 불균형 등은 수확 이전부터 위기를 만든다.

세계 곳곳의 농업 종사자들은 생산이 아닌 생존을 고민하고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수확량보다 유통과 저장, 수출 체계의 문제로 더 큰 손실을 입고 있다.

시장 논리가 만든 식량 사각지대. 식량 가격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곡물 선물시장, 국제 무역 조건, 통화 가치, 물류비,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이 가격의 흐름을 좌우한다. 이 구조는 특히 저소득국가와 내륙국가에 치명적이다. 이들은 직접 생산량이 적거나, 물류 접근성이 낮아 식량을 ‘가진 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게다가 식량 유통을 좌우하는 대기업들은 자체 계약 농장을 통해 수확량을 통제하고, 일부 지역에서 독점적 가격 책정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세계는 여전히 많이 만들고 있지만, 모두에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근의 땅’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흔히 ‘기아’는 자연재해나 분쟁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 여겨지지만, 그 이면에는 ‘결정되지 않은 선택’이 존재한다.

어떤 나라가 어떤 지역에 얼마나 수출할 것인지, 어떤 조건으로 원조를 제공할 것인지,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어떤 작물은 폐기할 것인지, 이 모든 것은 정책과 이윤 계산 속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기근은 종종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판단과 선택의 결과다. 국제기구의 식량 원조도 종종 정무적 고려와 맞물려 있으며, 필요보다 ‘정치적 시점’에 따라 흘러간다.

공정한 식탁을 위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농산물 생산을 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세계 식량 체계의 유통, 거래, 접근 방식 전반에 대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자급 가능한 지역 농업 생태계의 재건, 투명한 가격 책정, 불공정 무역 구조의 해소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곡물은 무기이자 자산이며, 동시에 생명의 최소 조건이다. 오늘날 식량이 누구의 식탁에 오르느냐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향하는 방향을 결정짓는 윤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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