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응답하지만 듣지 않는다
2025년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자동화되어 있다. 고객센터에는 더 이상 사람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고, 패스트푸드 매장은 무인 키오스크로 가득 차 있으며, 병원 접수와 기업 채용마저 알고리즘이 처리한다. 이 같은 변화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이상한 정적 속에 놓인다. 분명 더 빠르고 정확해졌는데, 왠지 소외되고 거절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기계는 응답하지만, 듣지 않는다. 사용자의 음성을 분석하고 명령을 실행하지만, 감정과 맥락은 처리하지 않는다. 기술은 계속 말하지만, 인간은 점점 침묵하게 된다.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직업들 AI는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일과 역할, 나아가 존재 방식에 대한 재정의를 강요하고 있다. 상담원, 콜센터 직원, 매장 안내원, 단순 입력 담당자, 주차 관리원 등 수많은 ‘말을 다루는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기능직이 아니라, 사회의 말문을 열어주는 존재들이었다.
이제 그 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고 있다. 효율성과 정확성, 비용 절감이 최우선되는 구조 속에서 ‘느리고, 틀리고, 감정적인 존재’는 점점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말할 수 없는 인간 AI는 인간과 대화하지 않는다. 요청을 받고 실행할 뿐이다. 문제 해결은 더 빨라졌지만, 설명은 사라졌다. 선택은 늘어났지만, 맥락은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0번 연결법’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시스템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등장했고,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말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존재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술의 정답은 정답일까 기술은 늘 ‘정답’을 내놓는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정확한 경로를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묻는다. 그것이 진짜 정답인가? 그 정답 안에는 누군가의 좌절과 생략, 무시된 감정은 없는가?
정확성은 때때로 인간다움을 희생시키고, 효율은 공감을 대체한다. 더 이상 ‘대신 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판단하고 정리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에게 기회를 묻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대체한다.
설계되지 않은 존재는 배제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를 삭제하는 것이다. 안내하는 사람, 설명하는 사람, 기다려주는 사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설계되지 않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은 기술에 의해 측정 가능한 수치로 환원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는 점차 지워진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설계된 목적에 따라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를 배제한다. 그리고 그 배제의 대상은 언제나 말수가 적고, 말할 수 없고, 말해도 반영되지 않는 이들이다.
기술은 묻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고 있는가 기술은 질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행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기술은 말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침묵시키는가? 기술은 존재를 부르는가, 아니면 지우는가?
이제 질문은 기술이 아닌 우리에게 향한다. 말하는 인간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기술에 모두를 동화시킬 것인가. 선택은 조용히 이루어진다. 아무도 묻지 않지만, 모두가 따르고 있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