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물 위기, 기후가 아닌 구조적 실패가 부른 재난

 

보이지 않는 물 전쟁이 시작됐다 – 기후담론에 가려진 ‘물 분배의 정치학’

2025년, 세계는 ‘물’이라는 단어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유엔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물 부족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경고했으며,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구는 기후변화와 가뭄, 산업 확장으로 인한 물 공급 위기에 대해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물 위기는 단순한 기후 재난을 넘어선다.

그것은 더 복잡하고, 더 인간 중심적이며, 더 정치적인 위기다.

‘물 부족’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기후변화와 가뭄, 엘니뇨 같은 자연현상과 엮여왔다. 그러나 정작 물 위기의 핵심은 대부분 ‘관리 실패’와 ‘자원 분배의 불균형’에 놓여 있다. 많은 나라에서 물은 넘치도록 존재하지만, 그 분배 체계는 누군가에게는 생존 수단을, 누군가에게는 통제 도구를 의미하게 되었다.

도시의 물, 시골의 목마름

도시화는 물 자원을 가장 빠르게 바꾸는 축이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와 산업 단지들이 요구하는 물의 양은 주변 농촌 지역 전체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양을 일주일 만에 소진시키기도 한다. 특히 신흥 경제국에서는 수도와 대기업이 사용하는 수량을 우선 배정하면서, 농업 기반 마을은 관개용수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이러한 분배 구조는 결국 빈부 격차로 이어진다. 수도권에 사는 중산층 이상은 스마트 미터기와 정수 시스템을 갖춘 고급 아파트에서 하루 수백 리터의 물을 아무 불편 없이 사용하지만, 외곽 지역이나 빈민가 주민은 트럭으로 공급되는 제한된 물을 돈 주고 사서 살아간다.

물은 점점 더 명확한 계급의 지표가 되고 있다.

물도 권력이다

정치적으로, 물은 국경 너머에서도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동에서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둘러싼 터키, 시리아, 이라크 간의 수자원 분쟁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고,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이 강 유역 지배권을 두고 정기적으로 긴장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가뭄 때문이 아니다. 상류 국가가 하류 국가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을 ‘무기화’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댐의 수문 하나를 여느냐 마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농업이 붕괴되기도 하고, 대규모 정전이나 인구 이동까지 초래된다.

물은 군사력보다 은밀하지만, 훨씬 더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은 해결책인가, 또 다른 특권인가

많은 국가는 해수 담수화, 정수 시스템 고도화, 스마트 급수 체계 등 기술 기반 해법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술 접근성의 문제로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다. 선진국과 일부 부유한 개발도상국은 첨단 기술을 통해 물 부족을 관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여전히 오염된 강물과 마른 우물에 의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들이 물 정화 및 공급 시스템을 소유하게 되면서 ‘민영화된 물’이 새로운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NGO들은 “물이 시장의 언어로 팔리는 순간, 가장 취약한 이들은 생존권조차 위협받는다”고 경고한다.

전 세계적으로 상수도 민영화에 대한 시민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다.

기후 위기라는 명분 뒤에 감춰진 것들

기후변화가 물 부족의 한 원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한 인간 사회의 선택이다.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는가는 사회 시스템이 결정한다.

문제는 기후담론이 때때로 모든 원인을 자연에 돌리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뭄 때문’이라는 말은 관리 실패, 불공정한 분배,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를 가리기 쉬운 구실이 된다.

특히 물과 관련된 국제 원조 사업이나 개발 프로젝트의 다수는 정치적 로비나 경제적 이권에 휘둘리며 실질적 해결보다는 숫자 맞추기식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필요한 건, 공정한 분배 구조의 재설계

세계가 직면한 물 위기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인위적이고 구조적인 결과다. 누군가는 매일 수백 리터의 물로 잔디를 관리하고, 누군가는 흙탕물을 떠마시며 생존한다. 이 극단적인 격차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떤 기술도, 어떤 기후협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물을 생존권이자 기본권으로 선언하고, 국가별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공정한 자원 분배 원칙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물은 더 이상 무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의지의 문제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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