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 7장 13절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이 구절은 구원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말로 해석되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좁은지를 강조하기 위한 협박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이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간절한 권면이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익숙하게 알던 두 갈래 길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넓은 문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고, 그 길은 자유롭고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문은 곧 세상의 방식, 자기중심적 삶,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길을 상징한다.
넓고 편해 보이지만 결국 멸망으로 향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반면 좁은 문은 출입이 불편하고 수고를 요하는 문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피되었고, 선택받지 못한 길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선포하셨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은 복음의 길, 즉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자기부인과 순종의 길이다.
이 말씀은 단지 구원 인원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따르는 삶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문’은 어떤 의미였을까?
유대인의 도시나 성읍에는 크고 웅장한 문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무역과 이동, 교류가 이루어졌다.
큰 문은 많은 이들이 드나들며 물자와 사람의 흐름을 자유롭게 만들었고, 효율적이고 넓은 문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 곁에는 작은 출입문도 있었는데, 밤에는 큰 문을 닫고 이 작은 문만 열어 경계와 안전을 유지했다.
이 작은 문은 짐을 지고는 통과하기 어렵고, 고개를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었으며, 그 상징은 곧 겸손과 자기를 비우는 행위와 연결되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지 공간적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은 자신의 짐을 벗고, 낮아지며, 주님의 기준에 순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좁은 문은 고통스럽고 수고로운 길을 나타내지만, 그 끝은 반드시 생명에 이른다.
이것은 종교적 형식이나 신념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길이며, 오직 진정한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은 그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찾는 자가 적다는 점은 그 문이 얼마나 진지한 결단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앙의 길은 여전히 선택의 연속이며, 매 순간 우리는 넓은 길과 좁은 길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넓은 길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이며, 끝이 멸망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좁은 길은 불편하고 때론 외롭다.
믿음대로 사는 사람은 조롱받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하며, 세상의 기준과 맞서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좁은 문은 단지 구원의 입구가 아니라, 신자의 삶의 태도와 본질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짜 신자의 길이며, 좁지만 반드시 생명에 도달하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고백하지만, 좁은 문을 향해 실제로 걸어가는 이는 많지 않다.
믿음이란 말보다 행동이며, 고백보다 순종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 말씀은 선택하라는 요청이며, 동시에 따르라는 명령이다.
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문을 향해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 문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신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