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신앙을 덮을 때, 복음은 침묵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중세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면죄부, 교황의 절대 권위, 종교 재판, 성경의 독점과 성직자의 부패 등은 중세 교회가 단지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속 권력과 긴밀히 결합된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작은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다.
교회는 박해 속에서 태어났고, 로마의 칼날 아래 순교로 신앙을 지켰으며, 초대교회의 헌신과 공동체적 사랑은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지닌 공동체에서, 구조와 제도에 갇힌 권력의 일부로 변질되었을까?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후 국교화하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 더 이상 박해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황제의 보호를 받는 기관이 되었고, 그 결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점점 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회 건물은 웅장해졌고, 성직자들은 고위 관료처럼 대우받았으며, 주교들은 지역 사회의 실질적 통치자로 기능했다. 복음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해석할 권한은 성직자들에게만 주어졌고, 일반 신도들은 예배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전환점은 성경의 독점이다. 중세 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공식으로 인정했고, 그 해석 권한은 교황청과 소수의 신학자들에게 있었다. 이는 교리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평신도의 신앙 생활은 점점 더 미신적이고 형식적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면죄부 제도는 그 단적인 예다.
죄의 용서가 회개와 믿음이 아닌, 헌금이나 성물 구매로 전환되면서 복음의 본질은 흐려졌고, 교회는 점점 더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교회는 영적 지도자라기보다 유럽의 하나의 ‘국가적 기관’처럼 기능했고, 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기 전까지 수백 년간 유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권위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교회는 말씀 공동체였고,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권위는 점차 성경이 아닌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교황의 무류성(오류가 없다는 교리)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복음을 특정한 해석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진리를 독점하는 문지기로 변할 때, 신앙은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나 중세 교회 전체가 타락했다는 단순한 이분법도 위험하다. 그 시대에도 진실한 신앙인들이 있었고, 수도원 운동과 공동체 개혁 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났으며, 성경을 스스로 읽고자 하는 평신도 운동도 이어졌다. 그들은 때로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박해를 받았지만, 복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종교개혁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었다. 중세 말기 영국의 존 위클리프, 체코의 얀 후스, 이탈리아의 사보나롤라 등은 성경의 회복과 교회의 정결함을 외쳤고,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의 개혁은 그 흐름의 열매였다.
성경은 어느 시대든 교회가 본질을 잃고 형식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진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흐름을 보여준다. 구약에서는 왕들이 타락할 때마다 선지자가 등장했고, 신약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이 극에 달했을 때 예수께서 오셨다. 교회는 제도 이전에 공동체이며, 구조 이전에 말씀의 공동체다. 중세의 타락은 인간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며, 동시에 말씀으로 돌아갈 때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증거다.
권력이 중심이 될 때, 복음은 희미해진다
교회가 세상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존경이 복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영향력과 조직력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진짜 교회의 힘이 아니다. 지금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중세 교회의 타락은 먼 역사가 아니라, 오늘 교회가 다시금 경계해야 할 거울이다. 권력은 빠르게 본질을 침묵시킨다. 복음이 다시 중심이 될 때, 교회는 시대를 밝히는 진짜 빛이 될 수 있다.
작성자: 이시온 | 매일말씀저널